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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묵상

📝 매일묵상(2026년4월6일)

작성자 베들레헴교회
작성일2026-04-06 10: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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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1:17(23)-27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밤새 내리던 비가 그치고 아침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젖은 나뭇잎 끝마다 맺힌 물방울은 아침의 조각난 햇살을 받아 조용히 빛나고, 선선한 바람은 밤의 무거움을 씻어낸 듯 마음을 스칩니다. 은혜의 단비에 씻긴 하늘은 더 깊고 맑아졌고, 어제의 먼지와 답답함을 지나온 자리마다 새로운 숨결이 스며드는 것만 같습니다. 죽음과 침묵과 눈물의 밤이 길게 지나간 뒤, 하나님은 익숙한 세상을 전혀 다른 빛으로 다시 열어 보이십니다. 끝난 줄 알았던 자리에서 생명이 다시 가만히 일어나고, 젖은 땅 위 가지 자른 나무에 새순이 밀어 오르고 꽃이 피어나듯 상한 마음 위에도 소망은 다시 돋아납니다. 부활은 어쩌면 이런 아침과도 같지 않을까요!


마르다는 주님 앞에 서 있었으나, 그의 마음은 주님 앞에 있지 않았습니다. 마르다의 시선은 지나간 시간에 묶여 있었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이 말은 믿음의 고백처럼 들리지만, 실은 상한 마음의 항변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그렇지요.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주님의 침묵 앞에서는 사랑보다 서운함이 먼저 일어나곤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지체하심은 무관심이 결코 아닙니다. 주님의 침묵은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 가운데 더 깊은 믿음으로 이끄시기 위한 거룩한 기다리심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서둘러 해결해주시기보다, 그 문제 한가운데서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의 과거를 설명하지 않으셨고, 미래를 위로하는 데 머물지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지금 이 자리에서 주님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주님은 말씀으로 자신을 주십니다. 마르다는 마지막 날의 부활은 믿었지만, 눈앞에 서 계신 부활의 주님은 아직 온전히 믿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비극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훗날의 영광은 말하면서도 오늘의 순종은 미루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미래를 추측하는 힘이 아니라, 현재의 주님께 자신을 맡기는 결단입니다. 참된 신앙은 고통이 사라진 자리에서 생기는 확신이 아니라, 아직 무덤 냄새가 나는 자리에서도 “주여, 말씀하옵소서”라고 고백하는 태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질문은 주님께서 왜 이렇게 늦으셨습니까가 아니라 지금 우리 앞에 계신 주님을 믿느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죽음을 설명하러 오시지 않고, 생명으로 들어오십니다. 상처가 어떠한지 분석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뚫고 믿음을 일으키러 오십니다. 내 삶에 아직 무덤의 돌문이 닫혀 있고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해도, 부활은 이미 와 있습니다. 주님이 계신 자리에는 끝이 아니라 새롭게 시작되는 부활이 있습니다.


오늘도 밤을 지나 부활의 아침을 여신 주님, 죽음을 지나 생명으로 오신 주님,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과 함께 부활을 열어가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손일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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