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7:13-17 “13. 여호와께서 각 선지자와 각 선견자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지정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돌이켜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 나의 명령과 율례를 지키되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하고 또 내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너희에게 전한 모든 율법대로 행하라 하셨으나 14.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그들의 목을 곧게 하기를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던 그들 조상들의 목 같이 하여 15. 여호와의 율례와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들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과 경계하신 말씀을 버리고 허무한 것을 뒤따라 허망하며 또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따르지 말라 하신 사방 이방 사람을 따라 16.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명령을 버리고 자기들을 위하여 두 송아지 형상을 부어 만들고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하늘의 일월 성신을 경배하며 또 바알을 섬기고 17. 또 자기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복술과 사술을 행하고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그를 격노하게 하였으므로”
1912년 타이타닉호의 침몰 원인은 빙산 그 자체가 아니라, 그날 하루에만 여섯 번이 넘는 빙산 경고를 무선실에 전했는데, 교환사는 승객들의 안부 전보에 바빴고, 경고는 선장에게까지 전해지지 않았으며 배는 속도는 줄이지 않고 방향도 돌리지 않았습니다. 배가 침몰한 근본적인 원인은 빙산이 아니라, 경고를 외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경고는 언제나 그렇게 다가옵니다. 경고는 우리를 살리려고 보내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외침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선지자와 선견자들을 통해 끊임없이 돌이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책망이 목적이 아니라 끝까지 붙드시려는 사랑의 손길이며 표지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질서 속에, 우리의 양심에 음성속에, 선지자의 입을 통해, 마침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 통해 그분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지금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모습이 떠오르신다면 그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채찍을 든 심판자입니까, 아들을 내어준 아버지의 모습입니까?
이스라엘의 몰락은 네 걸음이었습니다.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말씀을 버리며, 허무한 것을 뒤따라 허망해지고, 마침내 스스로 팔렸습니다. 두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하나님이라고 하며 섬긴 것은 자기들 마음에 편리한대로 합리화한 것이었고, 하나님 앞에서 품은 합당하지 못한 생각, 곧 마음의 우상이었습니다.
그것이 처음에는 작은 불신앙과 편리함의 타협이었지만, 하나님이 보내신 작은 경고들을 무시한 것들이 악순환이 되고, 그들은 어느새 이방 민족과 똑같이 자녀를 불에 바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이 잃어버린 가장 큰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였습니다(사59:2). 그러므로 신앙의 내리막의 첫걸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듣지 않고, 버리고, 허무한 것을 따르고, 자기 편한대로 하나님을 만드는- 우상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돌아갈 길이 열려 있습니다. 13절 가운데 “너희는 돌이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징계를 예고하기 전에 먼저 회복으로 초대해주십니다. 경고가 계속 들린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아직 은혜의 날 안에 있다는 증표입니다. 우리를 찾으시는 목적이 벌이 아니라 회복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경고의 외침으로 끝나지 않으시고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의 앞으로 돌아오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집나갔다가 돌아온 둘째 아들을 향해 아직 거리가 멀어도 단숨에 달려오시는 아버지의 길 위에 오늘 우리의 자리가 비어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부르시는 그 음성을 듣고 따라가 그 사랑의 손길에 붙들림을 받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손일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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