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6-11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라며 눈에 보이는 정치적 승리의 시간(크로노스)을 물었습니다. 이에 주님은 때(크로노스: 인간의 때)와 시기(카이로스: 하나님의 때)는 아버지의 권능에 속한 것이니 너희가 알 바가 아니라고 단호히 선을 그으십니다.
미래의 시간은 그 누구도 알 수가 없습니다. 오직 현재만이 영원과 맞닿아 있는 유일한 지점입니다. 우리는 언제 내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라는 나의 시간표에 집착하며 미래를 엿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미래의 시간을 재고 있기보다,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완성될지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그 나라의 시민으로서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때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사명에 초점을 맞추라고 하시면서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원동력으로 성령의 권능을 약속하셨습니다.
제자가 걸어가는 삶은 내 지혜나 열정으로 세상을 바꾸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입니다.
경주말이 기수가 조종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과 같이, 세상을 바꿀 동력은 우리에게서 나오지 않습니다. 내 안의 성령께서 하시는 일에 나를 내어드릴 때, 우리는 비로소 예루살렘과 땅끝까지 이르는 증인의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단순히 물리적인 이별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제한된 장소를 넘어서 온 우주의 주님으로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새로운 통치의 시작입니다. 성경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가롯 유다의 배신까지도 그분의 거대한 구속사적 계획 안에서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선한자의 역할뿐 아니라 악한 자의 행동까지 통제하시어 결국 의도하신 목적을 이루십니다. 이는 마치 거대한 바둑을 두는 것과 같습니다. 사탄이 어떤 수를 두더라도, 우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은 그 모든 움직임을 통제하시며 결국 승리로 이끄십니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악인이 득세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최종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고 하시는 천사의 말은 우리를 복음의 사역 현장으로 보내는 격려입니다. 이제 하늘만 쳐다보는 막연한 신앙에서 벗어나, 우리에게 주신 마지막 말씀을 들고 세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화려하게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도 성령의 권능을 의지하여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진정한 왕으로 모시며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내시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손일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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