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15-17 “15.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16.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17. 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하나님은 모든 일을 그의 주권적인 섭리 가운데 행하십니다. 유다의 배신조차 하나님의 계획 밖에 있는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성경이 응하였으니”라는 베드로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사람뿐 아니라 예상 밖의 인물들, 심지어 부정적 행동과 실패까지도 사용하셔서 결국 그의 뜻을 이루십니다.
이집트의 바로 왕,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바사의 고레스, 그리고 예수님의 생애 속 아우구스투스, 헤롯, 빌라도, 가롯유다까지도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루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사건의 표면보다, 그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의 손을 보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유다를 배신자로 보지 않고,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로 봅니다. 유다는 멀리 있던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 한가운데 있던 사람이었고, 사명의 일부를 맡은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유다의 책임이며, 다른 하나는 그의 죄조차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셨다는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초대교회는 유다의 실패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말씀과 기도 속에서 공동체를 다시 세우며 사명을 준비했습니다. 이것이 곧 상처를 해석하는 믿음의 방식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가는 길은 순간적인 열심이나 성과 중심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 안에서 예수님을 꾸준히 따르는 삶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성경 말씀과 우리가 하나님께 말하는 기도의 연합을 통해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빚어 가십니다. 그래서 초대교회가 제자들 중에 가롯유다가 없어도 가장 먼저 한 일이 말씀과 기도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홀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신앙은 언제나 공동체 안에서 자라기 때문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본문 속 120문도의 모습은 부활하신 주님을 중심으로 다시 조직되는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사람 하나의 실패 때문에 흩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그 빈자리까지도 다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공동체를 세워 갔습니다. 따라서 성도와 교회는 사람의 실패와 흔들림 때문에 무너지지 말고, 말씀과 기도 속에서 다시 사명을 붙들어야 합니다. 복음은 예언을 성취하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제자도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며, 공동체 안에서 말씀과 기도로 빚어지는 삶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일에도 낙심보다 기도를 택해야 하고, 혼란보다 말씀을 먼저 택하고, 사람이나 사건에 대한 집착보다 그리스도께 대한 헌신을 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을 이루고 계시며, 교회는 바로 그 성취된 예언 위에 서 있는 공동체입니다.
오늘도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과 그 은혜에 감사하며 성취된 예언의 말씀 위에 담대히 서서 다시 오실 주님의 증인된 삶을 살아내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손일 목사 드림.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