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음 1:1-5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와 실제로 연결되는 사건입니다. 죽음과 두려움의 한복판에서 사람을 살리는 것은 인간의 말이나 도덕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도 요한이 예수님을 “좋은 분” 이라고 소개하지 않고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고 선포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역사 속에 잠시 등장한 인물이 아니라,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이시며, 구원의 근거가 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창조주이시라는 사실이 왜 구원과 직결됩니까?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기에, 예수님은 죄와 허물로 무너진 존재를 새롭게 빚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보수하거나 고치는 정도의 외적 변화가 아니라, 창조주께서 죄와 절망 가운데 있는 인생 안에 새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새 창조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무너지고 실패했어도 소망이 있는 이유는, 예수님은 이미 태초부터 계셨던 분이며, 우리의 상처와 죄보다 먼저 존재하신 은혜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는 말씀은 사람들이 흔히 추구하는 돈·성공·소유가 참된 생명이 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 생명은 그냥 살아 있는 것, 숨쉬고 먹고 하는 삶이 아닙니다. 생명은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삶입니다. 풍성한 인생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가지라고 말하지만, 예수님 안에서 주어지는 생명은 그런 소유를 넘어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삶입니다.
구원은 단지 지옥을 피하는 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 생명이 들어오고 그 생명이 빛이 되어 삶의 방향과 가치관을 바꾸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참된 구원은 삶의 열매로 드러납니다. 이전에는 어둠이 편하고 죄가 가볍게 여겨졌다면, 이제는 빛을 사모하고 죄를 아파하게 되며, 욕망보다 주님을 향한 갈망이 더 커지는 변화가 나타납니다.
구원의 핵심은 내가 얼마나 잘 믿느냐에 있지 않고,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리스도로서 충분합니다. 믿음은 구원을 만들어 내는 힘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원을 붙드는 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믿음의 크기보다 창조주이시며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의 말씀, 만물의 창조주, 생명과 빛의 근원이시며, 진정한 구원은 그분과 연결될 때 시작됩니다. 빛되신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생명에로 나아오라고 부르십니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풍성한 생명을 주시는 말씀이십니다. 빛되시는 말씀이십니다.
오늘도 다른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그분 안에서 새 생명과 빛 가운데서 참되고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손일 목사 드림.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