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청년성도님들, 오늘도 세상 유혹과 시험 속에서 복음으로 마음을 지키시기를 기도합니다. 유 1:3-4 “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거짓은 거칠게 오지 않고 조용하게 스며든다는 사실이 두렵습니다. 성경은 거짓 교사를 “양의 옷을 입은 늑대”라 부르고(마 7:15), “의의 사역자처럼 가장하는 자들”이라 말합니다(고후 11:13-15). 그들은 문을 두드리며 들어오기보다(요즘은 이단들이 대담하게 교회 문을 두드리며 들어가도 되느냐고 물어보기도 한답니다) “가만히(비밀리에)” 스며듭니다(벧후 2:1).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
더 위험한 것은, 그들이 우리와 같은 단어를 쓴다는 점입니다. 예수, 은혜, 성령, 사랑…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같은 단어라 해도,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이 있을 수 있다고(고후 11:4). 단어가 같으면 마음이 놓이지만, 의미가 달라지면 결국 삶도 달라집니다. 은혜가 회개로 이끌지 않고, 자유가 거룩을 세우지 않으며, 사랑이 진리를 놓아버리는 순간, 그때 거짓은 평안이라는 얼굴로 우리를 붙잡고, 실제로는 영혼을 마르게 합니다.
유다는 그래서 단호하게 경계하며 권면합니다. “단번에 주신 믿음을 위하여 힘써 싸우라”(유 1:3-4). 이 싸움은 사람을 향한 공격이 아니라, 복음의 중심을 지키는 사랑입니다. 내 안에서 예수님이 도움 주시는 분으로만 남고, 주 되시는 분으로 모셔지지 않는다면, 그때부터 신앙은 은근히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거짓 교리의 끝이 무서운 이유는, 주님을 밀어내고 내가 주인이 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분별은 결국 지식, 정보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더 알수록(단지 개념이 아니라 인격으로), 우리는 그럴듯한 말보다 하나님의 성품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는 하나님, 그러나 죄인을 살리시기 위해 십자가에 오신 하나님. 이 하나님을 아는 만큼, 우리는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거룩한 삶, 사랑의 삶으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분별의 기준을 마음에 새겨봅니다. 은혜가 나를 예수님께 더 가까이 데려가는가?
은혜가 내 마음을 무디게 하는가, 아니면 회개로 깨우는가? 그 열매가 나를 겸손하게, 정직하게, 사랑하게 만드는가? 무엇보다 내 삶의 운전석에 예수님이 앉아 계시는가?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따뜻하고 통찰력 있는 영적 분별력을 달라고. 누군가를 정죄하는 눈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의 마음을 지키는 분별의 눈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말씀으로 저의 길을 밝히시고, 십자가로 저의 욕망을 다스리시고, 성령으로 저의 걸음을 바로잡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외부의 소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방에서 주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세상의 번쩍이는 빛이 아니라, 생명의 길을 밝히는 등불을 따라 걸을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오늘도 다른 복음이 아니라, 참 복음 안에서 머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믿음의 선한 싸움으로 승리하는 복된 날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손일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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